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호연재는 조선 영조 46년(1770년)에 건립된 이 고장의 대표적인 학당(서재)으로서 이 지역의 인재들이 모여 학문을 논하고 시문을 짓던 곳입니다. 문향이 넘치던 이 호연재에서 학문을 연마한 대표적 사람들을 지금도 팔문장(八文章)이라고 일컫고 칭송할 정도로 호연재는 이 고장 사람들에게 친숙한 존재였고 학문의 요람이자 기둥 역할을 수행해 왔습니다.
그 학맥은 면면히 계승되어 구한말 무렵부터는 호연재에 모여든 문객들이 망국의 비분강개를 시문집 등으로 엮어내게 되자 1906년 일본경찰은 호연재를 이 지역 불온사상의 발상지로 지목하고 강제철거하기에 이르렀습니다. 그에 앞서 우리 고장 선각들은 1901년 호연재를 보흥의숙으로 개칭해 교육기관으로 출범시켰고, 1905년 광명의숙으로 이름을 바꾸어 사립학교로서의 정규교육을 시작하였습니다. 이 광명의숙을 모태로 하여 삼천포 공립 보통학교(지금의 삼천포 고등학교)가 설립되었습니다.
철거된 후에도 호연재는 주경야독하는 초당 서재로 건립 운영되면서 훈장과 학동들이 호연지기로 뭉쳐 3.1독립만세운동을 주도하기도 하였습니다. 이에 이 고장의 원로와 민초들이 뜻을 모아 호연재 복원에 나서 2008년 10월 한식목조기와가 팔작지붕에 98.1제곱미터의 정면5칸, 측면2칸 건물로 복원하였으니, 이 고장 문운의 역사성과 넋을 일깨우고 충 효 예의 중심학당으로서 호연지기의 정신을 길이 전하고자 함에 그 뜻을 두고 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