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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종대왕의 태실 수개의궤는 제작 되었을 것으로 추측되나 현재 전해지는 것은 없다. 때문에 현재 전해지고 있는 이 『세종대왕 태실 수개 의궤』와 『석 난간 수개의궤』, 『표석 수립 시 의궤』의 3권이 유일하게 남아 있는 기록이라고 하겠다. 이 비문은 조선 초기 태종 18년(1418)에 승려와 신도들이 이곳에 매향하고 그 내용을 암각한 것이다. 그 당시는 왜구에 의해 격심한 침탈을 받던 해안 지방의 백성들 입장에서는 왜구의 창궐이 보다 큰 불안이요, 현실적 위기감이었다고 생각되는 것이다. 단종대왕의 태실 수개의궤는 현재로서는 따로 전해지는 것이 없고, 다만 세종대왕의 것과 함께 기록된 『세종대왕·단종대왕 태실 수개의궤』류 만이 전해지고 있을 뿐이다.
사천시 소장『세종대왕·단종대왕 태실수개의궤』는 모두 3권으로 되어 있으며 태실을 수개하였거나 태실의 석 난간을 수개하였을 때 그리고 태실의 표석을 세울 때의 여러 가지 정황과 절차, 제의과정, 석물의 형태, 제작과정, 동원된 인력과 물품 등에 관한 여러 가지 정보가 고스란히 전해지고 있어 유형문화재로 지정되었다. 만력 29년 (선조 34년, 1601)의 세종대왕태실 석난간 수개의궤는크기가 33㎝×78㎝이고 한 쪽이 11행으로 모두 13쪽의 필사본이고, 옹정 8년(영조 6년 1730)의 세종대왕 단종대왕 태실 수개의궤는 크기가 35㎝×87㎝이며 한 쪽이 13행이고 모두 23쪽으로 필사본이며, 옹정 12년(영조 10년, 1734)의 세종대왕 단종대왕 태실표석 수립시 의궤의 크기는 35㎝×87㎝이고 한쪽이 13행으로 모두 23쪽으로 된 필사본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