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농악은 대략 상고시대부터 우리 민족이 농사에 종사하기 시작한 때와 그 맥을 함께 한 것으로 보아진다. 그리고 두레라는 우리 민족 고유의 생활공동체 속에서 계승되어져 온 향토음악의 한 맥락이라 하겠다. 5월 파종 후의 즐거움, 농사일이 끝나는 추수절의 기쁨과 농한기의 애환을 새해가 시작되는 정월의 지신밟기 등에서 농악은 농민들의 정서를 대변하는 대중성 있는 민속악이었다. 그리고 이러한 정치적, 지리적 여건상 예부터 외침이 많았던 것과 관련하여 군악으로 이어지기도 했다. 이는 우리 민족의 저항심과 지킴의 정신이 군악과의 연계 속에서 더욱더 특징 있는 농악으로 발전되었다.
진주ㆍ삼천포농악에도 군대에서나 볼 수 있었던 무기나 영기, 긴나팔, 전립, 행건, 놀이마당에서의 오방진, 길군악, 별굿놀이 등이 있으며 치배들의 강하고 활동적이며 진취적 기상이 보이는 멋과 기교 등이 군악연계설을 뒷받침해 주고 있다. 한때 다른 것과 마찬가지로 농악도 일제시대를 거치면서 암흑기를 맞았으나 고 박경호 선생과 김한호 선생으로부터 사사 받으신 황일백, 문백윤선생들의 노력으로 명맥을 유지하여 계승되어 왔으며 해방 이후에도 서부경남 각처에서 활동하시던 분들이 황일백, 문백윤선생을 중심으로 열심히 활동을 했다.
많은 활동 중에서도 특히 전국 규모의 각종 경연대회에서 최고의 영예를 차지함으로써 우수함이 입증되고 지방 농악으로서의 정통성이 인정되어 마침내는 ‘66년 농악부문에서 처음으로 국가무형유산 제11호로 지정되어 그 결실을 맺었다. 어렵고 힘든 생활 속에서도 농악을 위해 노력하시던 황일백 선생께서 ‘74년에 작고하시고 ’80년에는 문백윤선생마저 작고하시어 잠시 주춤하던 농악이 두 분 선생으로부터 사사 받으신 박염(장구, 91년5월 기능보유자 지정) 선생과 김선옥(쇠, 2000년8월 기능보유자 지정) 선생으로 인하여 활성화를 이루었다. 이후 해마다 서울 놀이마당에서의 정기공연과 지방발표회 및 각급학교에서의 농악부 창설, 전국대학생들에게의 전수, 지역의 젊은 농악인들에게 농악을 전수하면서 후진 양성에 정열을 쏟고 있으며, 나아가서는 지역문화 축제에도 선두에 나서 활동함으로써 지역문화를 선도해 나가고 있다.
1차(첫 번째 마당) : 오방진 풀이 동,서,남,북,중앙으로 진을 감았다 풀어 나오는 놀이이며, 빠른 덧보기가 주된 가락이다. 일명 덕석말이라고도 하며, 전쟁에서 적진을 차지한 후 사방을 경계하며 진을 새롭게 다지는 마당이다.
2차(두 번째 마당) : 열림굿 느린 덧보기에서 함께 어울려 놀다가 가락이 점점 빨라지면서 다드래기 가락으로 넘어간다. 주위 경계와 진을 다진 후 안전하다고 느껴 마음 놓고 어울리는 마당이다.
3차(세 번째 마당) : 덧보기 버꾸놀음 치배 전원이 연풍대를 돌며 상모를 돌리고 신명나는 장단과 어우러져 고수들이 몸을 땅에 비스듬히 눕혀 도는 곡예와 같은 자반뒤집기라는 기예를 보이며 논다. 전투로 지친 군졸들의 사기를 고취시키기 위한 놀음이다.
4차 (네 번째 마당) : 길군악 치배가 평걸음을 걸으며 앞마당에서의 거친 숨을 쉬는 마당으로 길군악에서 반길군악으로 다시 운풍대가락(구름과 바람을 의미하듯 가볍고 경쾌한 춤가락)으로 넘어가고 또다시 외연풍대(연풍대의 반대방향으로 돈다)로 넘어가는 마당이다.
5차(다섯번째 마당) : 영산 다드래기 외연풍대로 놀던 치배들이 원상태로 돌며 가고 중앙에 있는 쇠잽이들이 서로 어울려 논다. 이때 소고수들은 쇠잡이와 나머지 다른 치배들 사이를 돌며 흥겹게 놀고 다드래기로 넘어가서 끝맺는 마당이다.
6차(여섯번째 마당) : 멋 버꾸놀음 치배 전원이 연풍대를 돌며 상모를 돌리고 노는 놀음으로 소고수들은 앞돌아 앉고 뒤돌아 앉기를 세 번한다. 빠른 덧보기 가락으로 넘어가서는 치배 전원이 연풍대를 도는 것과 함께 소고수들은 자반 뒤집기를 하며 노는 마당이다.
7차(일곱번째마당) : 등맞이 굿 (품앗이 굿) 빠른 굿거리 가락으로 중앙에서 쇠잡이들이 등을 맞대고 앉고 곧바로 돌아앉아 마주보고는 용개통통가락으로 바꾼다. 이후 쇠를 땅에 놓고 일어나면서 춤을 추다가 점점 빨라져 버린 악에 맞춰 먹다드래기 가락으로 바꿔 몸을 옆으로 하여 뛰며 노는 마당이다.
8차(여덟번째 마당) : 안전 버꾸놀음 덧보기 가락으로 치배가 연풍대를 한번 돈 후 쇠를 막고 몸을 옆으로 하여 돌다 덧보기 가락으로 바뀌면서 몸을 바로 하고 춤을 추며 놀다가 제삼다드래기로 끝맺는 마당이다.
9차(아홉번째 마당) : 호호 굿놀이(점호굿) 길군악 가락에 맞춰 치배기 연풍대를 돌며 “호호” 라는 말과 함께 돌며 노는 마당이다. 전쟁에서의 전사자나 부상자등을 확인하는 점호굿이다.
10차(열번째 마당) : 개인 영상놀이 상쇠의 이끎으로 소고수, 열두발 채상모, 장구, 북 순으로 개인의 기량을 맘껏 펼쳐보이는 놀이마당이다. 전장에서의 무용담을 보여주는 굿이다.
11차(열한번째 마당) : 별 굿놀이(장수를 추모하는 놀이) 다드래기 가락에 맞춰 노는 마당으로 상쇠가 악을 멈춰 치배들을 향해 “ 여보게 동지들” 하고 외치며 치배들이 “ 어이” 라고 대답, 다시 상쇠가 “아, 오늘 같이 좋은 날에 옴매라 깽깽 옴매라 깽깽 머구만 칠 것이 아니라” 하고 외치면 치배들이 “그렇지” 라고 답한다. 이어 “아, 하늘에 올라가 별이나 한 번 따보세” 라고 하면 “좋지” 로 답하고 상쇠가 재차 “별따자 별따자 하늘 올라 별따자” 라고 한뒤 다드래기, 다드래기를 짧게 끝내고 또다시 상쇠가 “어서 치고 술먹자 조포국에 김난다” 라고 외치면 다 같이 다드래기로 한바탕 신나게 논다. 치배들의 권위에 대한 묘한 기대감을 암시한다.
12차(열두 번째) : 흩음굿 상쇠가 “헤이라 헤이라 각기 사방 헤이라” 라고 외치면 모든 치배들이 마당에서 거방지게 / 푸지게 어우러져 신명나게 노는 일종의 뒤풀이 형태의 마당이다.
진주 삼천포의 매구(경상도에서는 예부터 농악이란 말 대신에 매구란 말을 많이 쓴다)를 군악이라고 할 만큼 군악적 요소가 많이 보이며, 이것을 뒷받침하는 것은 다음과 같다.
군악적인 요소만이 아니라 건립적인 요소, 놀이적인 요소, 마을굿의 요소가 결합한 형태이다. 가락은 섞인 박자로 만들어진 가락과 굿거리가 많이 쓰이지 않고 맺고 푸는 기교가 작으나, 가락을 빨리 모는 경우가 많아 힘이 있고 활달하다. 버꾸(법고수)들이 몸을 공중으로 날려 도는 자반뒤집기가 뛰어나다. 진주지역과 삼천포지역의 매구(풍물)의 판굿과 가락, 전승 계보가 조금씩 다르게 내려 왔으나 요즘에는 함께 하는 경우가 많다.
호적수, 기수, 쇠, 징, 북, 장구, 버꾸, 포수, 집사, 양반 - 그 밖에 가장녀(여성을 가장한 남성), 허드레 광대가 옛날에 들어갔다고