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곤양향교의 창건연대는 명확하게 전해지고 있지 않으므로 정확하게 알 수 없으나 대개 곤양군이 세종 원년(1419)에 군으로 승격되었음을 상기할 때 향교도 세종시대에 창건하였을 것으로 추정된다. 그 후 중종(中宗) 25년(1530)에 펴낸 《신증동국여지승람》곤양군조에 의하면 ‘관원은 군수 · 훈도 각 1인씩이다’라는 기록을 보아도 능히 알 수 있는 일이다.
어득강이 곤양군수로 부임한 후 그의 많은 업적 가운데 특히 향학에 힘써 많은 유생(유학을 닦는 선비)을 길러 내었다 한다. 그 후 명종 1년(1546)에 군수 노진이 부임해 와서 처음으로 정동)에 터를 잡아 문묘를 지었다 하였으므로 이 향교 역시 전학후묘형의 소설위 향교임을 알 수 있다. 현종 4년(1663)에는 군수 박영계가 범동으로 옮겼고, 순조 7년(1807)에는 군수 신오가 부임해 와 다시 지금의 자리로 옮겨서 대성전, 대성문, 명륜당, 동재, 서재, 풍화루 등 9동의 건물을 세웠고, 그후 오늘에 이르기까지 여러 차례 중수를 거듭해 왔으며, 문묘의 위차(位次:위패를 모시는 순서)나 향사 등은 모두 사천향교와 같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