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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백사는 비문과 기문에 의하면 1925년 신상, 신환, 신건과 지방 유림의 발의로 창건되어, 장절공 신숭겸), 목은 이색, 운곡 원천석, 불훤재 신현 등 네 분의 신위를 모시고 매년 3월 중정일에 향사를 올리고 있으며 1959년 경백서원과 강당인 영수재를 유림들의 발의로 창건하여 오늘에 이르고 있다.
- 신숭겸 초휘는 능산이요, 전라도 곡성에서 태어났다. 서기 918년(무인) 6월에 기장인 홍유, 배현경, 복지겸 등과 더불어 왕건을 추대하고 고려를 창건하여 개국원훈대장군이 되었고 뒤에 평산으로 관적을 받았다. 태조10년 정해년(918) 9월에 신라 경애왕의 구원요청으로 태조가 친히 장졸을 거느리고 출병 중 이미 신라 서울을 노략질하고 돌아가는 견훤을 맞아 대구 팔공산에서 싸우다가 포위를 당해 전세가 몹시 위급하게 되자 얼굴모양이 태조와 흡사한 공은 태조를 피신케 한 후 어차에 갈아타고 나아가 김낙과 더불어 끝까지 싸우다가 대사 순절하니 벽상호기태사개국공삼중대광의경익대강위이보지절저정공신으로 추봉 되고 장절이라 증시 되었다가 태조가 친히 제례를 행하고 지금의 춘천 소양강 북쪽 비방동에 예장을 했는데 금두를 보호하기 위하여 삼분의 의총을 만들었다 한다. 묘하에 수묘군 3000호를 두고 묘소후록에 원당을 두었으며 순절지인 대구에 지묘사를 세워 명복을 빌게 하는 한편, 태백성에는 상충사(태사사)를 창건하고 철상을 주조하여 봉안했다. 고려 태조 묘정과 숭의전에 배향되고 태사사, 덕양사, 동양서원, 표충사, 도포서원, 율리사, 경백사, 순절단, 용산단, 영각유허, 춘천방동영당 및 장군단에서 향사한다.
- 이 색 1328(충숙왕15)- 1396(태조5) 고려말의 성리학자 여말삼은의 한사람. 호는 목은. 14세에 성균시에 합격, 중서사전부로 원에 있던 부친으로 인해 원의 국자감 생원이 되었고 3년간 유학, 부친상으로 귀국하였다. 1353년(공민왕2) 괴과에 들었으며 다시 정동성 향시에 장원으로 합격하여 서장관에 임명된 후 원나라에 들어가 다시 문과에 급제, 한림지제고가 되었다. 귀국하여 내서사인에 올랐으며 밀직제학동지춘추관사가 되어 국정에 참여했다. 1367년(공민왕16) 성균대사성이 되었고 정몽주, 김구용 등과 명륜당에서 학문을 강론하니 이에 정주의 공신의 호를 받았으며 1375년(공민왕22) 정당문학이 되고 문충보절찬화공신의 호를 받았으며 1377년(우왕3) 추충보절동덕찬화공신의 호를 받고 우왕의 사부가 되었고, 그후 오사충의 상소로 장단 등지에 귀양 갔으나 돌아와 다시 한산부원군에 피봉, 예문 춘추관사로 임명되었다. 정몽주와 관련되어 다시 금천등지로 유배되었다. 조선개국 후 태조는 그의 인재를 아껴서 1395년(태조4) 한산백으로 봉하여 예를 다하여 출사를 종용하였으나 끝내 고사하였다. 다음해 피서 차 여강으로 가던 도중 급사하였다. 후에 서애는 후한의 양표를 비겨서 그 절개를 특필하였다. 문하에 권근, 김종직, 변계량 등을 배출하여 조선 성리학의 주류를 이루게 하였으며 한편 불교에 대한 조예도 깊어 고려말기의 학문과 정치에 거족을 남긴 존재였다. 시호는 문정공이다.
- 원천석 고려말기의 은사. 자는 자정, 호는 운곡. 고려의 정계가 문란함을 보고 치악산에 들어가서 농사를 지으며 부모를 봉양하는 한편, 이색 등과 교유하면서 시사를 개탄했다. 일찍이 방원을 가르친바 있어 조선 건국후인 1400년 태종이 즉위하자 자주 불렀으나 응하지 않았다. 작품으로 망국 고려를 회고한 시조 한 수가 전하며 야사 6권을 저술했으나 증손 때에 이르러 국사와 저촉되는 점이 많아 화가 두려워 불살랐다고 한다. 원주의 칠봉서원에 제향 되었다.
- 신 현 1298년(충렬왕24)- 1377년(우왕3). 고려말기의 학자. 자는 신경, 고려개국 후손 신숭겸의 후손, 우탁의 문인. 충숙왕 때 문과에 급제하여 원나라에 가서 주공천, 허겸 등 유명한 학자들과 사귀며 더욱 깊이 학문을 연구하여 당시의 대학자로 추앙되었다. 명제로부터 스승의 대우를 받고 불훤재라는 호를 받았다.
그 후 무진년에 사론으로 진선 신공 휘 현과 목은 이공 색과 운곡 원공 천석을 추배하여 매년 음력 3월 중정일에 향사를 받들고 영수제를 지어 원거리에서 오시는 유림제관을 제숙시키며 오늘에 이르고 있으니 이는 유교인 뿐만 아니라 전 종원이 장절공(숭겸)을 비롯하여 세 선생님을 모시는 경모함이요, 순국대의의 위업을 앙양함과 동시에 후손들에게 숭조정신을 함양시켜 오고 있다. - 경백사 관련단체로는 경백서원(원장 최대경, 유계장 허상)과 평산신씨 경백사 보존회 (회장 신재희)가 있으며 - 경백사 관련 자료로는 경백사중수기, 경백사기, 영수제 강당기, 경백사정비명, 평산신씨문헌록, 국사대사전 등이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