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남양초등학교 북쪽편으로 시도 1호선의 동쪽 약 50m지점의 논밭 가운데 모두 7기로 북두칠성의 형태로 놓여 있다. 우리고장에서 지금까지 확인된 고인돌무덤은 모두 100여기나 되는데, 대개 사천바다를 중심으로 동부 4개면과 남양동 지역에서 주로 발견된다. 즉 사천읍 두량리, 장전리, 정동면 소곡리, 사남면 화전리, 그리고 용현면 신복리와 가장 많이 군집하고 있는 덕곡리 등이다. 고인돌무덤은 청동기시대의 묘제로 알려져 있으며, 우리나라의 청동기문화의 개시연대에 대해서는 학계의 논쟁이 있으나 대체로 기원전(B.C) 10세기에서 B.C. 3세기까지로 보고 있다. 그러나 고고학(고대 문화를 연구하는 학문)의 연구 발달로 최근에 나온 학설에 따르면 개시연대의 상한을 B.C. 2500년경으로 보는 학자도 있다. 청동기시대의 사람들은 고인돌 또는 돌멘(Dolmen)이라고 하는 지석묘와 돌널무덤을 만들어 시체를 매장하였는데, 묘제에 따라 부장품(패물과 그릇 같은 것을 무덤에 같이 묻던 일)이 석기류, 동기류, 토기류, 철기류 등 각기 달리하며, 지석묘는 선돌과 함께 거석문화의 상징으로서 오늘날 남아 있는 대표적인 선사시대의 생활 유적이라 할 수 있다. 1969년 8월, 단국대학교 박물관에서 정동면 소곡리 신월마을의 청동기시대의 무덤을 발굴하였는데 이때 많은 토기류의 유물을 발굴하기도 하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