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해방 이후 한국의 현대 문학을 대표하는 거목 김동리! 순수문학과 신인간주의의 문학사상으로 일관한 그는 광복 직후 민족주의 문학 진영에 가담하고 우익 민족문학론을 옹호한 대표적인 인물이다. 고유의 토속성과 외래사상과의 대립을 통해 인간성의 문제를 그렸고 6.25전쟁 이후에는 인간과 이념의 갈등에 주안을 두었다. 대표작품은 《화랑의 후예》,《무녀도》,《역마》,《황토기》,《등신불》등이 있다.
김동리 본명은 김시종, 동리는 필명으로 1913년 11월 24일 경북 경주 태생. 경주 제일교회 부속 계남학교를 졸업한 후 1926년 대구 계성학교에 입학하였 다가 1928년 서울 경신학교 3학년에 편입하였으나 이듬해 중퇴하였다. 1935년 중앙일보 신춘문예에 《화랑의 후예》, 이듬해 동아일보 신춘 문예에 《산화》가 거듭 당선되어 등단하였다 그 후 《바위》, 《무녀도》《황토기》등의 문제작들을 발표함으로써 주목받는 신진작가의 한 사람 으로 부상하였으며, 유진오와 ‘순수논쟁’을 벌이기도 하였다. 김동리의 문학세계에서 가장 뚜렷한 흐름을 이루고 있는 것은, 토착적 한국 인의 삶과 정신을 깊이 있게 탐구하면서, 그것을 통하여 우주 속에 놓인 존재로서의 인간에게 주어진 운명의 궁극적인 모습을 이해하려는 끈질긴 노력이라고 할 수 있다.
1934년 조선일보 신춘문예에 등단한 김동리는 창작에만 집필 하고자 조용한 곳을 찾던 중 형의 소개로 다솔사에 머물게 된다. 다솔사의 요사채 안심요에 머물렀던 것이다. 《황토기》의 장사 와 절맥설 모티브, 《당고개 무당》의 당고개, 《황토기》와 《산제》의 주산, 《바위》의 다솔사 앞 장군석과 문둥이 마을 등 그의 작품의 주요 모티브가 된 것이 바로 사천 다솔사 지역에 있었던 것이다. 다솔사에 얽힌 전설을 기초로 하여 쓰여진 작품이《황토기》이고 다솔사에 있었던 소신대를 바탕으로 한용운 스님과 범부 범술 세 분의 ‘소신공양’ 담론에 충격을 받고 쓰여진 작품이 《등신불》이다.
김동리 소설의 모티브가 된 다솔사를 중심으로 한 문학적 관광요소들을 재조명하고 문학테마의 축제를 개발함에 따라 지역주민의 자긍심을 일깨우고 문화적 욕구충족에 기여하기 위해 등신불 축제를 기획하였다. 축제의 컨셉은 소설 등신불에 묘사되어 있는 등신불의 모습에서 모티브를 찾았으며, 축제의 주제는 ‘평범한 삶, 특별한 만남’이라 했으며, 슬로건은 ‘나의 등신불을 찾아서’로 설정하였다. 즉, 등신불은 우리들의 삶 그 자체다. 소설 속의 등신불처럼 ’허리도 제대로 펴고 앉지 못한 자세’는 삶의 무게에 짓눌려 사는 인간의 모습 그대로다. ‘머리위에 조그만 향로를 얹은 채’라는 글귀에서 인간은 누구나 알게 모르게 자신의 머리 위에 향로를 얹고 살아간다는 걸 깨달을 수 있다. 이 향로에서 어떤 향이 피어오르는가에 따라 우리들의 표정과 모습은 달라진다. 또한 등신불 자체가 해탈한 인간의 모습이듯 우리는 일상적인 삶속에서 나름대로의 가치를 추구하며 타인과의 만남, 즉 인연을 통하여 소중한 가치와 자아를 발견하게 된다. 그것이 곧 우리들의 등신불이다.